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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약방

[힐링동화] 환절기

1. 오래된 일기를 전부 버렸다.
주변에 어른이 없었기에
삶의 지혜나 철학, 살아가야하는 이유, 나만의 업을 찾는 방법, 거친 세상 속에서 살아남는 생존법, 사람을 다루는 스킬 등등.. 전부 홀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하나씩 배웠어야 했다.
일기는 흐릿한 감정과 빛 바랜 기억을 생생히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일기장을 들추어보며 지금보다도 더 서툴었던 그 때의 나와 눈을 마주쳤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
답답하고 막막할 때가 많았지.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아파도 끙끙 앓았던거
세상 누구보다 잘 알아.
애 정말 많이 썼어."


앞을 향해 내딛는 몸은 1g이라도 더 가벼우면 좋다. 낡은 말뚝에 묶여있던 나이 든 망아지를 이제서야 놓아주었다.
그가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는 작은 들판을 마련하기까지 먼 길을 왔다.


2. 오래된 감정의 패턴을 발견했다.
늘 틀에 벗어나지 않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습관처럼 어제 느꼈던 감정으로 하루를 채운다.
스스로에 대해 특별히 기대하는 바가 없다.
미래에 뭔가 더 나은 걸 경험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꾸역꾸역 밥을 먹고 주어진 일을 한다. 벅차오르는 감동도, 온몸을 전율하게 하는 뿌듯함과 감사,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기쁨, 걱정하지 않고 소리내어 울 수 있는 자유가 없다. 가슴이 돌 같이 굳었고 어깨가 가만히 있어도 축축 쳐진다. 영혼의 한 부분이 죽어있어서 우울하지도 기쁘지도 않다.


3. 낡은 패턴을 알아차리니 전환이 수월하다. 숨을 내쉴 때 발바닥으로 차가운 바람이 스치고, 들이쉴 때 가슴이 사방으로 쭉 늘어나는 것 같다.
눈물, 콧물도 주륵주륵 나는데 계절을 타나보다.

4. 결핍과 아픔이 나아갈 길의 방향을 알려주었고, 삶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인정하고 나니, 안도감이 든다. 내장이 따듯하게 데워지는 느낌이 나고 뜨거운 숨이 코와 입을 통해 몸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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