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있다. 다음 학기 시험을 전부 통과하고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2차 국가고시를 통과하면 1년 간의 실습이 시작된다. 6개월은 독일에 있는 약국에서 나머지 6개월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산업체, 석사과정, 연구소, 약국). 선택지가 여러 개다 보니,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방학 동안 한국도 방문하고, 약리학 연구소에서 단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생각이 약간 정리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뿌연 안개가 낀 듯 뭔가 확실하지 않고 잘 모르겠는 부분도 남아있다.

약국
1차 국가고시에 등록을 하기 위해서 두 달 동안 실습을 해야한다. 한 달은 무조건 약국에서 하고, 나머지 한 달은 대학 부설기관을 제외한 약학과 관련한 기관이나 산업체에서 해도 되었다. 나는 두 번의 방학 동안 서로 다른 도시에 있는 두 개의 다른 약국에서 실습을 했는데, 내가 가까이서 지켜본 약사의 삶은 너무 지루해 보이기 그지없었다. 예과 공부(Grundstudium)도 채 마치지 못한 학생이 할 수 있었던 일이 많이 없었기도 했고, "다이내믹 코리아 (Dynamic Korea)"에서 20년 넘게 살아왔기 때문에 약사의 일상이 더 재미없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워라밸이나 급여 면에서 이점을 누리지만, 지식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전문직으로서의 의무는 약사 개인의 양심에 맡겨진 것 같았고, 환자(Patienten)와 손님(Kunden)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혼란스러움도 동시에 찾아왔다.

지원, 그리고 거절
독일인 약대 애들은 대부분 1차 국가고시가 끝나고 2차 국가고시가 끝나고 실습할 자리를 구하기 시작한다. 나는 1차 국시를 통과하고 한 학기 지나서 어느 강사가 소개해준 약국 6개월 + 산업체 6개월의 1년 패키지에 지원하게 되었다. 강사와 대화할 당시만 해도 "무조건 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1년이 지나도록 확답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겨버렸다. 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길래 전화를 해보니, 회사내부 공사가 있어서 답이 늦어졌으니 너무 미안하다, 이번 여름에 인터뷰를 보러 오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이후 인터뷰 날짜를 정하기 위해 메일을 몇 차례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다. 다시 전화를 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거듭되는 문의에도 불구하고 답장을 보내지 않아 지원자를 오래동안 기다리게 하는 행동이 외교적이고 (diplomatisch) 예의 바른 독일식 거절일 수도 있다는 나름의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고 이 1년 패키지은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더 좋은 기회가 생기려고 이런 일이 생겼나싶다.

석사 과정
석사과정을 눈을 돌리게 된 이유는 첫번째 지원을 하면서 감정이 상했던 게 크다. 물론 지지난 방학 때 의화학 연구실에서 연구보조로 일했던 경험도 한몫을 했고, 공부를 하면서 나름 재미를 느꼈던 적이 많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6개월 동안 무려 임금을 받으며 연구를 할 수 있고 외국인으로서 다른 독일애들보다 더 좋은 스펙을 가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도 해보았으나 어딘가가 석연치 않은 느낌은 여전하다. (학교나 연구테마를 바꿔야하는건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과정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것 같다. 한국에 다녀오고 나서 기숙사 방에서 홀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며 생각을 정리하는 중.
"약대 졸업이 목표였던 나에게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선택지가 여러 개 생겼고, 그래서 고민하고 있다"
"왜 독일에 왔지? 무엇을 원했더라?" 등등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이 계속된다.
내가 독일에 오게 된 이유에는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것들을 경험하며 나의 관점과 시각을 넓혀가는 것이 포함되어있다. 지식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면에서 성장하고 지평을 넓혀가는 "움직이는 삶". 늘 새로운 것을 궁금해하는 아이의 마음가짐.
그 다음에 떠오르는 질문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였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결과" 자체보다는 되어가는 과정을 중요시하자는 결론이 났다.
경제적 자유이든, 학위나 타이틀이 선사하는 명예이든 목표를 이루고 나서 느끼는 허무함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과정이 중요함을 알 필요성이 있다.
한 걸음씩 목표에 가까이 가는 스스로를 응원하고 기뻐하며 앞으로 되어갈 것을 기대하는 마음.
약대 졸업 이후 어디서 무엇을 하든 요런 자세로 매순간 마음을 다하는 걸 큰 방향으로 삼고 지나치게 가볍거나 무겁지도 않게 여행하듯 살기.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Cheers and to be continued...
1. 인터뷰하자고 말해놓고 이미 지원자를 뽑은 회사로부터 아예 연락두절된 경험은 독일인도 겪음.
2. 자소서도 제대로 쓰지않았는데 "이게 진짜 되나?"싶어서 들떴기 때문에 속상했지, 지나고 돌아보니 생각보다 별일 아니었음.
3. 이 글의 요지는 "학교과정이 끝나가서 다음 스텝을 고민한다"로 정리할 수 있음.
4. 이글을 읽으시는 독일약대지망생이 있다면, 겁먹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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